책소개
헤이안 시대 귀족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자조문학의 선구적 작품. 젠더적인 여성성을 구현한 최초의 여성 일기 문학. 이와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청령일기≫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낱낱이 서술하고 객관화해 헤이안 시대의 여성 문학 가운데서도 보기 드물게 보통의 귀족 여성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사적 가치가 높고, 세계 문학사, 특히 여성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헤이안 문학 전공인 정순분 교수의 정밀하고 통찰력 있는 번역을 통해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어로 다시 태어난 이 책은 원전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의 눈높이를 배려한 상세한 각주와 해설 그리고 권말 부록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천 년 전 일본 헤이안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일부다처제에서 오는 심적 고통의 나날들을 유려한 글솜씨로 우아하게 그려 냈다. 특히 작자의 뛰어난 와카 실력은 당시부터 유명했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와카를 통해 그 높은 문학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일기에 수록된 와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작자의 심정과 일생을 잘 드러낸 이 한 수의 작품, “한숨 속에서 홀로 지새는 밤이 밝기까지는 얼마나 길고 긴지 그대는 아는지요”는 후대의 ≪백인일수(百人一首)≫에도 수록되어 있다.
200자평
≪청령일기≫는 ‘하루살이일기’라는 뜻이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가네이에의 아내였던 작자가 일부다처제 아래 남편만을 바라보고 사는 자신의 삶이 마치 하루살이의 일생처럼 허무하다고 느껴 지은 제목이다. 일반적인 헤이안 시대 일기 문학이 ‘여방(女房)’이라는 전문직 여성의 삶을 기록한 것에 비해, 이 작품은 공직에 진출하지 않은 일반 귀족 여성의 개인적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지은이
당시의 여성들, 특히 황족이 아닌 여성들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작자 미치쓰나 어머니(道綱の母, 936∼?)에 대해서도 정확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달리 사회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유의 이름이 붙을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때는 주변 남자−남자들은 관직을 지녔기 때문에 기록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와의 관계에 의해서 그 호칭이 붙었다. 이 일기의 작자도 도모야스(倫寧)의 딸, 혹은 미치쓰나 어머니로 칭해지는데, 그중에서 작자에게는 여자 형제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미치쓰나 어머니로 칭해서 특정화하는 경우가 많다.
작자는 당시 대표적인 귀족으로서 섭정을 실시한 후지와라씨의 자손인 도모야스의 딸로, 93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도모야스는 후지와라씨의 자손이기는 했지만, 당시 세력의 중심이었던 북가(北家 : 그 외에 남가, 식가, 경가 등이 있었다)에서 보면 방계에 해당했으므로 관직이 그리 높지 않은 중류 귀족의 신분이었다. 작자는 문장생[文章生 : 대학료에서 기전이나 한시문 등을 배워 식부성(式部省)의 시험에 합격한 사람] 출신의 학식 있는 아버지 밑에서 와카, 한시문, 고토[琴 : 거문고와 유사한 현악기로, 현의 수에 따라서 긴(琴 : 7현)과 소(箏 : 13현), 와곤(和琴 : 6현)으로 세분화되었다]와 같은 교양 덕목을 배워 익힌 것으로 보인다. 작자는 헤이안 3대 미인으로 꼽힐 정도로 교양 있고 용모 단정했던 것으로 보이며, 와카에는 특히 재능이 뛰어나 나름대로 자긍심 강한 여자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954년, 작자의 나이 19세 때, 후지와라씨의 적류(嫡流)로 당시 우대신(右大臣)이었던 모로스케(師輔)의 셋째 아들인 가네이에로부터 구혼을 받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결혼 연령으로는 이른 나이가 아니었던 만큼, 이미 여러 남자와의 혼담이 있었지만, 가네이에의 구혼을 받아들인 것은 가네이에의 집안이 세력가라는 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작자가 결혼한 후 아버지 도모야스는 미치노쿠니(陸奥國) 지방 수령으로 임명되는데 그것은 지방관으로서 첫 부임이었으며, 첫 부임지로서 미치노쿠니 지방은 큰 지방이었다. 작자는 항상 불안한 아내의 처지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이 아버지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한편, 일상적인 보호자로서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도노모노 수령(主殿守) 후지와라노 하루미치(藤原春道)의 딸로 추정된다. 이 어머니는 964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는데, 본 일기 속에 그 슬픔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작자가 일상생활에서 그 어머니에게 얼마나 많이 의지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자 형제로는 마사토(理能)와 나가토(長能)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이복 관계다. 그중에서 작자와 동복 관계였던 쪽은 작자와 같은 집에 거주하며 이 일기에 언급되는 마사토였을 것으로 보인다. 나가토는 본 일기의 <권말 가집>을 편찬한 사람으로, 본인 역시 가인으로 유명했다.
옮긴이
정순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연구, ≪베갯머리 서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일본고전적연구소 객원연구원과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저서에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平安文學の交響≫(공저, 2012), 옮긴 책에 ≪마쿠라노소시≫(2004),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 천줄읽기≫(2008), ≪청령 일기≫(2009), ≪무라사키시키부 일기≫(2011), ≪사라시나 일기≫(공저, 2012), ≪천황의 하루≫(2012), ≪사누키노스케 일기≫(2013)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상권
1. 서문−허망한 내 인생을 쓴 일기
2. 후지와라노 가네이에(藤原兼家)의 구혼
3. 가네이에와의 혼인 성립
4. 혼인 직후 가네이에와의 증답
5. 아버지 도모야스(倫寧)의 미치노쿠니 지방관 부임. 가네이에의 요카와(橫川) 참배
6. 미치쓰나 탄생. 무로마치(室町) 골목길 여자 출현
7. 삼월 삼짇날. 언니와도 이별
8. 도키히메(時姬) 집에도 발 끊은 가네이에
9. 무로마치 골목길 여자, 아들 출산
10. 보통 정도로 돌아온 가네이에의 내방
11. 가네이에의 총애 잃은 무로마치 골목길 여자
12. 가네이에와 장가 증답
13. 가네이에와 노리아키라(章明) 친왕의 교분
14. 노리아키라 친왕 저택의 억새
15. 불안정한 아내 처지에 허무함 통감
16. 어머니의 죽음
17. 어머니의 일주기
18. 언니와 이별
19. 병환 중인 가네이에를 문병
20. 가모 마쓰리에서 도키히메와 증답
21. 황폐해 가는 집, 황폐해 가는 부부 사이
22. 이나리(稻荷) 신사와 가모 신사에 참배, 와카 봉납
23. 후시(怤子)에게 오리알 선물
24. 무라카미(村上) 천황 붕어, 천황 교체로 가네이에 승진 25. 서쪽 행랑채로 퇴궐한 도시(登子)와 교류
26. 하쓰세 참배 길, 집을 나서서 절까지
27. 하쓰세 참배, 가네이에의 마중
28. 맺음−있는지 없는지 허무하기만 한 하루살이의 일기
중권
1. 연두의 축가, 삼십 날 삼십 밤을 내 곁에서
2. 이쪽 시녀와 저쪽 시종의 왕래
3. 서궁(西宮) 좌대신 유배, 진심으로 동정
4. 병 앓고 불안한 마음에 유서 준비
5. 아이미야(愛宮)와의 증답
6. 고이치조(小一條) 좌대신 50세 경축 병풍가
7. 궁중의 활쏘기 시합과 미치쓰나의 활약
8. 오지 않는 밤이 30일, 낮이 40일
9. 가라사키(唐崎) 재계
10. 매를 풀어 주고 안타까워하는 미치쓰나
11. 이시야마사(石山寺)에 참배
12. 잡다한 일 저변에 흐르는 암담한 심정
13. 가네이에와 오미 관계 진척
14. 아버지 집에서 장기 정진
15. 나루타키(鳴瀧)로 출발
16. 한냐사(般若寺)에 도착
17. 한적한 산사, 숙모와 여동생의 방문
18. 가네이에의 사자 방문
19. 가네이에와의 교신, 시녀들과의 교신
20. 친족과의 대화
21. 미치타카(道隆)의 내방
22. 가네이에의 강압에 못 이겨 귀경
23. 귀가, 가네이에의 농담
24. 다시금 가네이에의 발길이 끊기는 나날
25. 두 번째 하쓰세 참배
26. 차분한 인생 관조, 중권의 결말
하권
1. 972년, 차분한 마음으로 맞이한 새해
2. 대납언으로 승진한 가네이에의 의연한 풍채
3. 세상 살기 힘들다고 새삼 느끼는 나날
4. 해몽가, 미치쓰나 장래에 대해 예견
5. 가네타다 딸과 가네이에 사이에 태어난 딸
6. 그 딸을 양녀로 맞아 가네이에와 부녀 상봉
7. 봄, 화재에 가네이에 문안
8. 야하타(八幡) 마쓰리 구경, 옆집 화재 뒷정리
9. 미치쓰나, 야마토(大和) 여자와 와카 증답
10. 별생각 없이 무료한 나날
11. 미치쓰나와 야마토 여자의 생기발랄한 증답
12. 태정대신 훙거, 불행한 이 몸의 신세 한탄
13. 점점 좋아지는 가네이에의 풍채와 날로 쇠락해 가는 내 모습
14. 미치쓰나의 근황, 야하타 마쓰리, 다시 화재
15. 도모야스의 권유로 히로하타(廣幡) 나카가와(中川)로 이사
16. 꿈길 끊어지고 맞이한 한 해의 끝자락
17. 미치쓰나, 우마조(右馬助)에 취임. 심산의 절에 참배 18. 후지와라노 도노리(藤原遠度), 양녀에게 구혼
19. 도노리, 내방 시작
20. 가네이에, 도노리 구혼 허락
21. 도노리의 초조한 애원
22. 도노리의 열의를 가네이에가 조롱
23. 신사에 와카 봉납. 단오절
24. 도노리의 구혼, 파국으로
25. 천연두 유행, 미치쓰나의 쾌유
26. 호리카와(堀川) 태정대신의 와카
27. 가모 임시 마쓰리, 오랜만에 보는 가네이에 모습
28. 미치쓰나와 야쓰하시(八橋) 여자의 와카 증답
29. 내 길고 긴 일생을 되돌아보며 일기 마감
권말 가집
부록
여성 문학으로서의 ≪청령일기≫
작자의 결혼 생활−일기의 줄거리
연표
지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반생의 세월을 허무하게 보내고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내는 여자가 있었다. 남들보다 외모가 뒤떨어지고 사리 분별력 또한 없어서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세상에 퍼져 있는 옛 모노가타리(物語)를 들여다보니 온통 진부한 이야기들뿐인데도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일기로 써 보면 조금 더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면 그 생활이 어떨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한테도 하나의 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흘러간 시간은 너무 오래되고 기억 또한 희미해져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나 애매하게 쓰인 곳이 꽤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