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전을 비틀어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뒤렌마트만의 독특한 희비극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엘리스국 의회는 날로 쌓여만 가는 쓰레기 처리 문제를 놓고 회의를 소집한다. 헤라클레스를 고용해 최소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런 제안에 헤라클레스는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빚 청산을 위해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엘리스국 쓰레기를 처리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강물을 끌어다 쓰레기를 한꺼번에 치우겠다는 헤라클레스의 계획은 수도국의 불허로 무산된다. 끝내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는 헤라클레스의 처지를 통해 제도와 규제에 얽매여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관료주의 병폐와 법치주의 한계를 지적한다.
한편, 이 작품은 영웅에 대한 풍자를 통해 영웅이 몰락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음을 강조한다. 헤라클레스의 무서운 괴력은 기술 자본주의 산업시대의 직업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자평
<헤라클레스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은 헤라클레스의 열두 모험 중 한 개 에피소드를 뒤렌마트가 극화한 것이다. 브레히트 이후 최고의 독일어권 작가라 불리는 뒤렌마트는 영웅 헤라클레스를 무력한 임금노동자로, 아우기아스를 대통령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지은이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는 스위스 태생의 독일어권 작가로서 전후 가장 위대한 드라마 작가로 평가된다. 뒤렌마트의 작품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영화화 되는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사무엘 베케트나 오이게네 이오네스크와 더불어 현대 속의 고전 작가로 인정받는다. 뒤렌마트는 희비극의 장르를 발전, 정착시켰으며 신과 인간 구원의 문제, 자유와 정의의 문제 등 철학적 테마를 독특한 드라마 기법을 사용해서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실험한 작가다. 뒤렌마트는 자신이 관찰하고 성찰한 것을 그로테스크, 패러독스, 풍자와 아이러니, 유머를 통해 희극화 함으로써 관객의 쓴 웃음과 성찰을 자아내는 데 특별한 기량을 보였다. 그는 어떤 영웅적 결단도 내릴 수 없는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반성 외에는 없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뒤렌마트는 항상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문제에 정열적으로 반응했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을 받쳐 드는 비평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학계는 뒤렌마트를 현대의 고전작가로, 60세에 신화가 되어버린 존재라고 최고의 찬사를 던졌다. 작품 활동 외에도 뒤렌마트는 핵무기를 반대하고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을 지지하는 등 세계 평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90년 12월 14일 노이샤텔에 있는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영면했다.
옮긴이
황혜인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본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뒤렌마트의 희비극≫(자연사랑, 2004), <알프레드 되플린과 헤르만 카삭 비교연구>, <그릴팔쪄 연구>, <괴테와 실러>, <레싱의 에밀리아 갈로티 연구>,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 연구> 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천사, 바빌론에 오다≫(책세상, 2007), ≪사포≫(박이정, 2005), ≪메데아≫(박이정, 2007)가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광경
의상
1. 열린 무대와 서곡
2. 얼음 덮인 올림포스 산 위에서
3. 무대 앞에서
4.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1
5. 테베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집 앞에서
6. 테베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집에서
7. 달밤 1
8. 달밤 2
9.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2
10. 절벽 위에서
11. 달밤 3·
12.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3
13. 탄탈로스 국립서커스
14. 다시 절벽
15. 아우기아스의 정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47~148쪽
아우기아스: 봐라, 나의 아들아. 나는 일생 동안 이 정원에서 남모르게 일해 왔다. 이 정원은 이렇게 아름답지만 약간은 서글픈 정원이기도 하지. 나는 헤라클레스가 아니야. 그 사람마저도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단 한 번도 관철시킬 수 없는 마당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체념의 정원이다. 나는 정치가이지, 영웅이 아니다. 나의 아들아. 정치는 어떤 기적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치는 인간들처럼 연약할 뿐이며 단지 허약함의 표상일 뿐이다. 그리고 항상 실패하게 되어 있지. 우리 스스로 선을 행하지 못한다면 정치는 어떤 선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선을 행하게 되었다. 나는 쓰레기를 부식토로 변화시켰다.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이런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해야만 한다. 독자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 넌 우리의 세계를 밝게 해 줄 은총을 강요해서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은총이 내려온다면 네 속에서 빛을 위한 순수한 거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적어도 전제조건은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 정원은 너의 것이다. 이 정원을 배척하지 마라. 정원을 있는 그대로 놔두어라. 네가 흉악한 것을 변화시키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정신 차리고 여기서 사는 것을 시도해 봐라. 이 흉측하고 황폐한 나라 한가운데서 사는 것을 시도해 봐라. 만족하는 사람이 아닌 채로 자기 불만을 계속 전달하며 시간과 함께 사물을 변화시키는 불만족하는 사람으로서 살아 봐라. 이게 내가 이제 너에게 부과하는 영웅의 행위며, 너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싶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