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공리주의란 ‘공리(功利, utility)’에 기초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려는 윤리설이다. 공리주의의 창시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벤담(J. Bentham)이다.
벤담의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의 윤리학을 가장 훌륭하게 발전시킨 사람이 밀(J. S. Mill)이다. 밀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개념을 단순한 감각적 쾌락에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쾌락으로까지 범위를 확대시켰다. 이런 정신적 쾌락이 있음으로 해서 윤리학에서는 이타주의가 나타난다. 그리고 윤리적 이타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밀은 ‘관념 연합의 원리(association)’를 도입했다. 이 원리를 따를 때 인간의 본성 속에는 자기중심적인 쾌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감(sympathy)’, ‘자애(benevolence)’ 등과 같은 사회화의 원리도 존재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사회화의 원리가 ‘선행을 베풀어라’라는 도덕적 의무감을 우리 내면에 심어 주게 되는 것이다.
벤담의 공리설이 자유방임을 옹호하기 위한 윤리설이었던 것처럼, 밀도 일차적으로는 자유방임의 정치 이념에 따른다. ≪정치경제학 원론(Principle of Political Economy)≫에서 밀은 자유방임, 즉 무간섭의 원리를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들어 정당화하고 있다. 첫째, 정부의 간섭은 개인의 창의력을 질식시키고 인간의 성장을 저해한다. 둘째, 간섭의 확장은 국가권력을 증대시켜 전제정치로 타락하기 쉽다. 셋째, 정부가 과다한 직능을 장악하는 것은 노동 분배의 원리에 위배된다. 넷째, 관리는 직무에 직접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다섯째, 각 개인의 성격 단련을 위해 개인의 활동 범위가 확장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밀이 자유방임을 지지하는 이유다.
이와 같이 밀은 개인주의의 신봉자이지만, 공리주의에서 동감, 자애와 같은 사회화의 원리를 적극 옹호함으로써, 사회주의에 관해서도 사심 없는 관용을 보인다. 그리하여 ≪자서전(Autobiography)≫에서 밀은 “장래의 사회문제는 최대한의 개인적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생산 원료를 공유하고 협동 노동의 이익을 분배할 때 어떻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렇듯 여기서 문제의 관건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 즉 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문제의식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밀의 공리설은, 벤담의 공리설과 달리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윤리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200자평
공리주의란 어떤 행위에 따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이 증진되거나 감소하는 경향에 따라, 그 행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오늘날 새삼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락사와 뇌사 등의 문제처럼 윤리적인 해결이 필요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공리의 원리가 합리적인 판단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우리의 문제의식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그 해답의 열쇠까지 거머쥘 수 있다.
지은이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벤담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대학 교육과 종교를 불신했지만, 아들인 밀의 교육에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밀은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고, 열일곱 살이 되던 1823년에는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동인도회사의 서기로 취직도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프랑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벤담주의에 대한 반감과 아버지의 냉정한 주지주의적 태도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 정신적 위기는 스물네 살이 되던 1830년까지 지속되는데, 이런 정신적 위기 극복과 관련해서 밀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부인과의 만남이다. 밀은 해리엇의 남편인 테일러의 양해를 얻어 해리엇과 20년 동안 순수한 교제를 지속하다가, 1849년 테일러가 사망한 후에 2년간의 품위 있는 간격을 가진 다음 해리엇과 결혼한다. 해리엇과 ≪자유론(On Liberty)≫(1859)을 공동으로 저술하는 등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혼한 지 7년 반 만에 해리엇이 결핵으로 죽음으로써 밀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Member of Parliament for Westminster)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입후보를 부탁하러 온 정당 관계자들에게 밀은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한다는 공약을 제시해 뜻밖의 높은 지지를 얻어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다. 임기 동안 밀은 노동자 출신 의원들을 지지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등 매우 진취적인 의정 활동을 펴지만, 3년 후 총선에서의 재선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 후 해리엇의 딸인 헬렌의 보살핌을 받던 밀은 1873년 아비뇽에서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는 말을 남기고, 부인 해리엇의 묘 옆에 묻혔다. 주요 저작에는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1843),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48), ≪자유론(On Liberty)≫(1859), ≪자서전(Autobiography)≫(1873) 등이 있다.
옮긴이
부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정훈장교로 3년 근무했다(육군 중위 예편). 1993년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대, 부경대, 동의대, 동서대, 부산대, 신라대 등에서 강의했고, 동아대학교 석당연구원 전임연구원, 동의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거쳐 현재는 영산대학교 교양교육원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관심 분야는 생명윤리학, 진화윤리학, 신경윤리학, 트랜스휴머니즘의 윤리 등이고, 한편으로 M. 셸러, A. 겔렌, N. 하르트만 등의 저서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차례
제1장. 개요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제3장. 공리 원리의 궁극적 제재에 관해
제4장. 공리 원리는 어떻게 증명되는가?
제5장. 정의와 공리의 관계에 대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공리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어떤 종류의 쾌락은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고, 한층 더 가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른 모든 것을 평가할 때는 양과 마찬가지로 질도 고려되는 것이 보통인데, 유독 쾌락을 평가할 때만 반드시 양에 의존하라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25쪽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