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랑스 보드빌 작가 라비슈의 2막극 <눈속임>과 단막극 <루르신 거리의 사건>을 엮었다. 보드빌(vaudeville)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발생한 희극의 한 유형으로, 오늘날에는 희극적인 상황을 주요하게 설정한 연극을 지칭하게 되었다. 라비슈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소시민의 어리석음과 악덕을 통렬히 비웃으며 어느 순간 씁쓸한 여운과 비애를 자아내는 고도의 극작술로 보드빌 희극을 원숙한 희곡 문학 경지로 끌어올렸다.
<눈속임>
라비슈의 작품은 부르주아 계층의 의식과 가치관을 세밀하게 드러내며,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가족과 세대가 갈등하는 양상으로 펼쳐진다. <눈속임>도 그런 전형에 따르고 있다. 말랭거 부부와 라티누아 부부가 자녀들 결혼을 준비하면서 생활수준을 부풀리고 가장해 상대 집안을 속인다. 지참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양가는 파혼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루르신 거리의 사건>
범죄 희극의 정수를 보여 주는 수작으로 초연 당시 크게 흥행했을 뿐 아니라 20세기 들어 두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랑글뤼메는 전날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흥취에 젖어 잠에서 깬다. 어쩐 일인지 동창생 미스탱그도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다.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하던 중에 간밤에 벌어진 끔찍한 부녀자 살인 사건 소식을 접한다. 여러 가지 정황이 두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완전범죄를 위해 증거를 하나둘 인멸해 나간다.
200자평
프랑스 보드빌 작가 라비슈의 2막극 <눈속임>과 단막극 <루르신 거리의 사건>을 엮었다. <눈속임>에서는 부르주아 계층의 의식과 가치관을 세밀하게 드러내며,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가족과 세대가 갈등하는 양상으로 펼쳐진다. <루르신 거리의 사건>는 범죄 희극의 정수를 보여 주는 수작이다.
지은이
외젠 라비슈는 스크리브의 영향을 이어받아 후대 ‘보드빌 연극의 황제’로 칭송되며 작품의 문학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인정받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던 외젠 라비슈의 출현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정치·사회의 격변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문화적 흐름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라비슈는 1815년 파리에서 태어나 1888년 작고하기까지 파리와 솔로뉴 지방 저택을 오가며 집필 생활을 했는데 그의 활발한 창작 기간은 나폴레옹 3세의 등극과 제2제정 시기에 해당된다. 왕정 시대의 지지자이며 권력의 지배 계층으로 부상한 시민계급이 정치·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제2제정 사회에서 라비슈는 동시대의 관중, 연극에 열광하는 관중을 위해 작품을 썼다.
그의 희곡들은 수량 면에서 무척 방대하지만 대략 두 가지 영역으로 분류된다. 환상과 부조리가 지배하는 보드빌과 소극(farce)이 첫 번째 영역에 속하고, 사실성에 근접한 희극(comédie)이 두 번째 영역에 속한다. 초기 대표작 <이탈리아 밀짚모자>(1851)를 비롯해 <까마귀 사냥>(1853)은 협업자 마르크 미셸과 공동으로 집필했다. 그리고 에두아르 마르탱과 협업한 작품인 <페리숑 씨의 여행>(1860)이 나온 이후 4년은 그의 화려한 작품 경력이 펼쳐진 시기다. 라비슈 작품의 정점에 해당되던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로 <눈에 낀 먼지>(1861), <샹보데 정거장>(1862), <사랑하는 셀리마르>(1863), <판돈 상자>(1864), <나>(1864), <표적>(1864)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영미권에서 <천연 자석(Lodestone)>이란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 <표적>은 콩피에뉴 궁전에서 초연되어 나폴레옹 3세와 왕비 외제니의 찬사를 받은 라비슈의 후기 걸작으로 평가된다.
라비슈가 1870년대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혼 외 애정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사랑하는 셀리마르>에서도 남녀의 삼각관계가 자세하게 그려진 바 있었지만 이것은 외적인 시각에 불과했던 반면, 대표작 <세 명 중 가장 행복한 사람>(1870)과 <그것을 말해야 할까요?>(1872)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남편과 애인이 벌이는 이야기의 내면을 철저히 파헤쳐 보여 주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자신들의 미천함을 눈부신 유머로 깨닫게 해 준다.
1830년대를 풍미한 스크리브의 ‘잘 짜인 극’의 창작 기법을 계승한 라비슈는 1850년대 이후 소극의 활기찬 연극 장치들을 동원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치밀한 극 구조를 포함시켜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극도의 사실성으로 투영해 보드빌 연극을 풍속희극의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켰다.
옮긴이
장인숙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수학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 연극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수원과학대학 공연연기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기와 연극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 이탈리아 근현대 희곡을 중점적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유럽 연극의 실기(연기, 연출)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연출가들≫(공저), ≪아리안느 므누슈킨과 태양극단의 공동창작 연극≫이 있으며 역서로 ≪바르바와 오딘극단의 연극 여정≫, 라비슈의 희곡, ≪이탈리아 밀짚모자≫, ≪표적≫, ≪페리숑씨의 여행≫이 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나타난 인물의 변형적 특성>, <보드빌의 극작술 연구>, <작크 코포의 연극 교육 : 실천적 의의와 방법>, <골도니의 연극 개혁: 쟁점과 양상>, <조르지오 스트렐러의 연출 미학>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눈속임
루르신 거리의 사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14쪽, <눈속임>
로베르: 잘난 체하려고, 폼 잡으려고, 겉멋 부리려고! 요즘 그게 유행이지. 눈속임을 해 가며 뽐내고…. 뻥을 치고…. 허풍을 떨지…. 모두 허영에 빠져서…. 형편에 맞추기보다…. “양쪽 다 평범한 집안이고…. 중산층 가정이죠…”라고 인정하기보다, 아이들의 장래와 행복을 망치려고 들잖아….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는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라는 대꾸나 하지. 그러고도 자네들이 아비라고! 잘 있게!
171쪽, <루르신 거리의 사건>
랑글뤼메: 못한다고! 이제 난 망했구나! 그 여편네가 다 떠들고 다닐 거야. 그러면 다음 달에 사람들이 말하겠지. “방금 신문에 났어! 랑글뤼메 일당이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대! 단돈 1수에 팔아!” (떨면서) 부르르! 저놈 입을 다물게 해야만 모든 게 끝날 텐데…. 모든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