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작품이 출간된 1960년은 퀘벡 주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된 시기다. 퀘벡 사회를 지배하던 지배 세력에서 벗어나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기운이 충만했던 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문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퀘벡 사회를 지배하던 성당 세력과 그들이 내세웠던 가치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적상≫은 이 시기 문학계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나중에 반체제 문학 대열에 참가한 다른 작가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준 작품이다.
조용한 혁명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벌써 1940년대에 조금씩 일기 시작하던 사회 변화가 1950년대를 거치면서 무르익어 1960년대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졌다. ≪서적상≫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 전 뒤플레시를 주 수상으로 한 권위 정부의 시기, 즉 암흑기(1945∼1959년)의 후반이다. 이 시기에는 텔레비전의 출현뿐 아니라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이주하는 이농 현상과 도시화, 중산층의 확대, 노조의 형성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맞서기 위해서 전통 엘리트 계층(의사, 치과 의사, 변호사, 성직자 등)은 더욱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고 교육과 지식을 관할하던 고위 성직자들은 금서 목록을 만들어 주민의 사고까지 조정하려 했다. 모든 권리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고와 생활윤리, 도덕 면에서 성당의 간섭을 받고 있던 주민들의 태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성당의 세력도 점차 약해졌다. 1959년에 뒤플레시가 죽고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장 르사주가 이끄는 퀘벡 자유당이 들어서서 퀘벡의 프랑스계 주민의 정체성 확보와 공립 복지국가 건설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고위 성직자 대신 공무원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정부와 성당이 분리되어 성당이 차지하고 있던 권력이 정부로 이양되었고 산업화와 도시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도시화가 확대되면서 도시는 시골과 달리 과거의 가치관, 성당의 반대 세력의 상징이 되었다.
≪서적상≫은 주인공 에르베 조두엥을 통해 성당의 권위와 억압에 반항하는 암흑기 말기의 퀘벡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몬트리올 출신 주인공 에르베 조두엥은 지식인이지만 야망도 희망도 없이 사는 사람이다. 게으르고 성격도 항상 삐딱하다.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며 아무 할 일이 없는 일자리를 찾는다. 바깥세상에 완전히 무관심하다. 한때 책도 많이 읽었고 아는 것도 많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처음엔 성직자들이 운영하는 중학교에서 복습 교사로 일했지만 실직하자 새 직장을 찾기 위해 정부 기관인 취업 알선소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우연히 만난 학교 동창의 소개로 몬트리올에서 몇 시간 거리의 생조아생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한 서점의 서적상 자리를 얻게 된다. 생조아생은 성당의 영향이 주민의 생활 모든 면에 편재(遍在)하는 곳이었다. 길 이름까지도 성인들의 이름에서 따왔을 뿐 아니라 퀘벡 주의 고위 성직자들이 발간한 금서 목록을 가지고 서점이 판매할 수 있는 서적을 감시하면서 주민의 사고까지 주도했다. 어느 누구도 성당 세력에 불복하거나 반항할 수 없었다. 사고방식이 좀 더 개방된 도시 출신 주인공 에르베는 성당의 권위나 생조아생 사람들의 도덕관념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서점 사장이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금서들을 성당 몰래 “믿음이 가는 독자”들에게만 팔아 달라고 요구했을 때 망설이지 않는다. 어느 날, “위험한 독자”로 낙인찍힌 한 중학생이 금서 목록에 있는 서적을 찾았을 때 에르베는 그 중학생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고 그 책을 팔게 된다. 결국, 그 지역 관할 신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궁지에 몰린 사장은 신부들을 미궁에 빠트리고 책망을 피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에르베에게 실행하도록 한다. 하지만 에르베는 자기만의 획책으로 신부와 사장을 동시에 따돌리고 혼자만의 이익을 챙긴다.
200자평
1980년에 문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퀘벡 문학계의 가장 명망 높은 아타나즈다비드 상을 받은 제라르 베세트의 대표작으로, 주인공 에르베 조두엥을 통해 성당의 권위와 억압에 반항하는 암흑기 말기의 퀘벡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퀘벡 문학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많은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다. 현재 퀘벡 주의 대다수 고등학교의 필독 도서며 1961년 문학위원회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지은이
제라르 베세트는 1920년 생탄드사브르부아 근처의 한 농장에서 태어나 생탈렉상드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30년부터는 몬트리올에서 살았다. 생트크루아 학교와 자크카르티에 사범학교를 거쳐 몬트리올대학에 진학했다. 몬트리올대학에서 1946년에 석사 학위를, 1950년에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퀘벡 주에서는 교편을 잡지 못했다. 미국의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1958년에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킹스턴에 있는 왕립 사관학교로 이직한다. 1960년부터 같은 도시에 있는 퀸스대학에서 20년 동안 문학을 가르치다가 1979년에 은퇴한 후 창작 활동에 몰두했다. 2005년 킹스턴에서 생을 마쳤다. 제라르 베세트는 소설, 수필, 시, 희곡 등 여러 문학 장르에서 알려진 작가며 퀘벡 문학계에서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 1954년에 창작가로서 등단해 초기에는 문학비평, 프로이드적인 심리분석 접근 방법을 적용시킨 심리 비평 연구를 발표했다. 또한 퀘벡 문학 선집의 구성과 출간을 주도해 퀘벡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고 퀘벡의 내면생활 탐험에 크게 공헌한 작가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57년 아버지가 치명적인 병에 걸리면서부터다. 초기작으로는 ≪싸움(La bagarre)≫(1958), ≪서적상(Le libraire)≫(1960), ≪교육가(Les pedagogues)≫(1961)를 꼽을 수 있는데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사실적이며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다. 이러한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초기 문체는 점차 신소설 문학 운동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 문체로 변화한다. 벌써 ≪잠복기(Incubation)≫(1965)에서 구두점을 생략해 주인공의 기나긴 의식의 흐름을 끊지 않고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이후의 작품에도 이러한 실험은 계속되었다. 심리의 이해, 무의식 세계의 탐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 단어의 창조와 구두점의 관례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괄호나 하이픈 등의 부호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사용해 무의식 세계를 좀 더 실감 있게 묘사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문체의 후기 작품으로는 ≪식사 초대 손님(La commensale)≫(1975)과 작가의 최고 작품이라 평받는 ≪유인원(Les anthropoides)≫(1977)과 자서전격 소설 ≪학기(Le semestre)≫(1979) 등 다수가 있다. ≪서적상≫은 문학위원회 대상을, ≪삶의 순환(Le Cycle)≫(1971)과 ≪잠복기≫는 각각 총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0년 총 작품의 문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퀘벡 문학계의 가장 명망 높은 아타나즈다비드 상을 받았다.
옮긴이
김명희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에서 1∼2학년을 마치고 1983년 캐나다로 유학해, 몬트리올대학교에서 언어학 학사 과정(1985년)과 석사 과정(1988년)을 마쳤다. 1996년까지 자동 번역, 텍스트 자동 생성 연구소(Montreal, Ithaca, N. Y.)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1991년부터 맥길(McGill)대학교의 한국어 강좌를 맡아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2011년 현재 맥길대학교의 전임 강사로 재직 중이다. 학생 때부터 퀘벡 이민국, 라디오 캐나다(프랑스어 방송국), 에어 캐나다, 기타 사기업들을 위한 통역·번역 일을 했다. 2009년도에는 몬트리올 교민 다섯 명과 함께 연극 단체 ‘연극사랑’을 창단해 몬트리올 한인 사회의 첫 연극 단체를 출범시켰고 창단 공연으로 김동기의 <아비>를 올렸으며 몬트리올의 프랑스어권 관객들을 위해 원작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공연 시 자막 상영을 해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아비>를 번역하면서 문학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문학작품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잔, 왕의 딸>이 두 번째 번역 작품이다.
차례
서적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학생이 ≪사회도덕론≫을 달라고 했을 때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 책은 없다고 하려 했다. 그런 책을 이런 학생한테 팔아 봤자 돌아올 것은 골치 아픈 일밖에 없을 게 뻔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일종의 연대감? 젊은 시절의 추억? 어쨌든, 작가의 이름을 말해 달라고 했다. 학생이 작가의 이름을 댔을 때 나는 사회조사 연구서냐고 물었다. 학생은 나를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역사와 해석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나를 무식한 바보로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적어도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잡동산이 밀실’의 책을 판 어느 누구보다도 더 믿을 만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