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악부(樂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한나라 때 무제(武帝)가 설치한 관청의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관청인 악부에서 채집한 각 지방의 민가(民歌)와 그곳에서 작곡해 조정의 연회나 행사 때에 부르던 노래를 가리킨다. 이러한 노래의 가사를 악부시(樂府詩)라고 칭했다. 이는 ≪시경≫의 채시(採詩) 제도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들 시의 내용 역시 ≪시경≫의 국풍과 마찬가지로 남녀의 사랑, 전쟁과 부역에서 비롯된 백성의 질곡, 지나친 수탈에 따른 사회의 모순 등을 백성들의 소박한 언어로 드러낸 것이 주종을 이루었다.
당나라에 들어서서 근체시인 율시(律詩)가 나옴에 따라 노래 가사로서 시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낭송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악부시도 이러한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음악과 분리되고 낭송을 전제로 하는 작품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신악부는 새로운 제목으로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한 악부 형태의 시를 말하는 것이다. 두보가 창시했고, 원결(元結), 고황(顧況) 등이 계승했으며 원진과 백거이 때에 와서는 사실주의 시가 운동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이후의 악부시는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사실주의 계통의 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악부시 본래의 음악적인 면은 배제하고 ≪시경≫에서 비롯된 현실 비판과 사회 풍자의 사실주의 사회시라는 정신을 계승한 것이 바로 신악부라고 볼 수 있다.
신악부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755년에 폭발한 안사(安史)의 난이다. 이후 흥성하던 당 왕조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즉, 중앙의 통치 권력이 약해지고 지방의 할거 세력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환관들이 발호해 백성에 대한 수탈이 점점 심해져서 사회의 모순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었다. 그 후 잠시의 안정기를 거치기는 했지만 한 번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한 사회의 모순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점점 심화되어 갈 뿐이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의 지식인들이 정치 면에서 여러 가지 개혁적인 주장을 내어 놓았고 문학에서도 문풍(文風)의 혁신을 통해 사회 개혁에 이바지하려는 주장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산문에서는 고문(古文) 운동이고 시가에서는 신악부 운동이다.
본서에 실린 원진의 <신제악부(新題樂府)>12수는 원화(元和) 4년을 전후해서 창작된 것으로 이신(李紳)의 <신제악부> 20수 중에서 선택해 창화한 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이신의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아 그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들 중당대의 현실주의적 사실주의 시가 작품은 만당(晩唐)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대표 인물로 피일휴(皮日休)·섭이중(聶夷中)·두순학(杜荀鶴)을 들 수 있다. 이들 역시 신악부의 형태로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폭로·풍자하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 중 피일휴의 <정악부(正樂府)> 10수는 연작시 형태로 신악부 운동의 전통을 계승해서 사회의 폐단을 폭로하고 공격하면서 풍자하는 현실성이 강한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0자평
음풍농월(吟風弄月).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서정을 노래하는 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시(唐詩)에 대한 인상이다. 정말 그런 시만 있었을까? 당나라에도 당연히 현실을 비판하고 백성의 질고를 반영한 사회시가 있었다. 이른바 ‘신악부’다. 신악부 운동을 주도한 원진의 <신제악부>와 피일휴의 <정악부>를 한데 모았다. 아름다운 것만이 시는 아니다. 시를 통해 사회를 개혁해 지식인의 소임을 다하려 했던 당대 문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지은이
원진의 자(字)는 미지(微之)이며, 당 대종(代宗) 대력(大曆) 14년(779)에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서 태어나 문종(文宗) 대화(大和) 5년(831)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가에서 신악부 운동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산문체 고문(古文)을 가지고 조서를 씀으로써 변문(騈文)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당시의 산문계에도 일종의 혁신을 일으켰다. 또한 제책풍격(制策風格)에 대해서도 일대의 개혁을 가했다. 이는 한유가 고문(古文) 운동을 제창한 것과 같은 영향력이 있었다. 원진은 다방면에 걸쳐 시에 재능을 발휘했는데, 현실을 생동감 있게 반영한 악부시 외에 서정을 서술하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옮긴이
정호준은 1994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원진(元稹)과 그 악부시(樂府詩) 연구>로 1998년에 석사 학위를, <두보(杜甫)의 함적(陷賊)·위관(爲官) 시기(時期) 시(詩) 연구(硏究)>로 200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도 두보 시를 중심으로 당시(唐詩) 연구를 하고 있다. 강남대학교 중국학센터 객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평택대학교, 호서대학교, 강남대학교 등에서 중국 문학과 중국어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영규율수 소재 두보 영물시 연구>를 비롯해 10여 편의 논문이 있으며, 공저로 ≪중국시의 전통과 모색≫, ≪중국 문학의 전통과 모색≫이 있고, 공역서로 ≪장자-그 절대적 자유를 향하여≫가 있다.
차례
해제
서
상양궁의 머리 센 궁녀
화원의 경쇠
오현의 연주
서량의 기녀
법곡
길들인 코뿔소
입부기
표국의 음악
호선을 추는 여인
남조의 조회
사로잡힌 오랑캐
음산의 길
해제
병졸 아내의 원망
도토리 줍는 노파의 탄식
탐관오리에 대한 원망
농부의 노래
나그네의 한탄
향고을 천시함
외국인을 칭송함
후림새를 애석해함
겉치레를 꾸짖음
농산의 백성을 슬퍼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느 날 아침 연 땅의 도적이 중원에서 난을 일으키니,
하수와 황수가 다 사라지고 헛되이 언덕만 남았도다.
개원문 앞에 만 리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있는데,
지금 원주로 갈 것을 재촉하네.
서울을 떠나 500리를 가니 얼마나 급박한 것인가,
천자의 현이 반이나 몰락해 벽촌이 되었네.
서량의 길이 이처럼 멀고 험한데,
변방의 장수들은 성대한 잔치만을 열고 있으니,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