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라고 하면 흔히들 ≪게잡이 공선≫의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이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가 쓴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바야시는 ≪하야마 요시키≫(1930)라는 책에서, “나는 하야마의 소설에 목덜미를 잡혔다. 그것은 정말 ‘늠름한 팔’이었다. 하야마는 지금까지 일본 문학에 없었던 ‘늠름한 문학’을 들고 등장한 최초의 작가다”라고 말했다. 또 하야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나는 당신의 뛰어난 작품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소설은 1914년 일본의 한 화물선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당시는 하야마의 기술대로 선주나 주주들에게는 가히 ‘황금시대’였지만, 하급 선원들이나 노동자들에게는 ‘과잉 노동의 황금시대’였다. 화물선 만주마루가 출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견습 선원이 작업 중 크게 다친다. 하지만 선장은 제대로 치료도 해 주지 않고, 선장의 처사에 분노를 느낀 하급 선원들은 힘을 합쳐 가혹하고 부당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서를 선장에게 들이댄다. 일단은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만주마루가 요코하마에 도착하자 선장이 미리 연락해 둔 경찰이 배로 밀어닥치는데….
작품은 하야마 자신이 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만큼 묘사가 리얼하고 체험에서 우러나온 독특하고 신선한 비유가 예술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의 문학 평론가 히라노 겐은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미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적은 그것을 문학에 최초로 정착시켰던 사실에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는 “새로운 혁명적 인간의 성장이 제시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실로 획기적인 작품이다. (중략) 어떻게 근대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몸에 익혀, 어떻게 ‘인간답게’ 성장해 갔는가를 작품 안에서 훌륭하게 그려 내고 있다” 한 바 있다. 프롤레타리아 진영 최강의 논객인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역시 “메이지 이후 일본의 근대 소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자평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잡이 공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한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화물선에 승선한 노동자들의 괴로운 처지와 저항을 생생하게 그렸다. 일본의 문학 평론가 히라노 겐은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미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적은 그것을 문학에 최초로 정착시켰던 사실에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지은이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는 1894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고등예과를 학비 미납으로 중퇴하고, 견습 선원 생활을 했다. 그 후 철도원 직원, 학교 사무원, 시멘트 회사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1921년 ≪나고야 신문≫의 기자를 하면서 노동운동에 깊게 관여하게 되었고,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조합활동가 조직에서도 활동했다. 1923년에는 나고야에서 공산당 관련 사건으로 검거되어 비밀경찰법 및 비밀결사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미결수로서 치구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옥중에서 단편 <매춘부>와 장편 ≪난파(難破)≫(후에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로 개제)를 탈고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아오노 스에키치(靑野季吉)에게 건넸던 <매춘부>가 1925년 ≪문예전선(文藝戰線)≫ 11월 호에 게재되고, 연이어 <시멘트 통 속의 편지>도 발표되면서 신인 작가로 주목을 받게 되자 기성문단에서도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1926년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이조사(改造社)에서 출간되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거장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종전 말기에는 국책에 따라 만주개척단원으로서 만주로 이주했다 1945년 10월, 일본의 패전으로 철수하는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둔다.
주요 작품으로는 <감옥에서의 반나절>(1924), <매춘부>(1925), <시멘트 통 속의 편지>(1926),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1926), <노동자가 없는 배>(1929), ≪이동하는 촌락≫(1931∼1932), ≪탁류≫(1936), ≪산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1938), ≪떠도는 사람들≫(1939) 등이 있다.
옮긴이
인현진은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 <요코미쓰 리이치(横光利一)의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고찰−≪상하이≫를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주)대한재보험 동경사무소에서 통·번역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 한국IT교육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전임강사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과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이 있고, 저서로는 ≪시나공 JLPT 일본어능력시험 N1 문자어휘≫,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핵심패턴 233≫,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표현사전≫이 있다.
현재 기업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차례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하급 선원들은 이 작업을 되풀이해야 했다. 무지하게 참기 힘든 일이었지만 견뎌 내야 했다. 결국 여덟 번을 반복했다. 이 작업은 여드레 동안 항해하거나 여드레 동안 감금당하는 일보다도 훨씬 길게 느껴졌다. 결국 네 시간 반이 걸렸다. 하급 선원들은 물 먹은 솜처럼 피곤에 절었다.
이등 항해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밤샘 작업을 하려던 마음을 바꾸었다. 그 역시 물 먹은 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원들이 빈대가 기다리다 지쳐 버린 잠자리로 기어 들어간 시간은 오전 1시 15분 전이었다. 그곳에선 잠조차 잠을 잤다.
−47쪽
홍콩으로 입항했을 때는 여자들을 뱃머리 쪽 물탱크로 옮기는 것을 잊지 않았던 갑판장이, 잠시 정신이 나갔는지 아니면 들떠 있었는지 싱가포르에서는 여자들을 체인 로커에서 빼내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닻을 내리자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쇠사슬과 사람의 살점, 뼛조각, 멍석 조각이 뒤엉켰던 것이다. 밀항하려던 열세 명의 여자들은 갈가리 찢기고 부서져 체인 구멍과 허공, 또는 쇠사슬과 함께 바다로 떨어져 나갔다. 뱃머리 갑판에 서 있던 갑판장과 목수는 물론이고 하급 선원들과 일등 항해사들도 젓갈처럼 되어 버린 사람의 살점을 한가득 뒤집어썼다.
하다는 체인 로커의 그런 역사가 가뜩이나 힘든 노동을 더 한층 불쾌하고 고달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체인 로커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졌다. 그래서인지 구멍을 통해 빨려 들어오는 쇠사슬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을 노리고 날아올 것처럼 느껴졌다.
−193~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