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에서 ‘앉아서는 경전·역사서를 읽고 누워서는 소설을 읽으며 뒷간에서는 사를 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시되었던 문학 장르가 사(詞)다. 그러나 사는 송대(宋代)에 전성기를 맞았고, 이청조는 ‘이안체(易安體)’로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의 사로 여성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 고전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중국 제일의 여류 문인 이청조의 사들을 통해 중국 사문학 흐름을 파악하고 여성 문학의 한 유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청조의 사(詞) 작품 중 대표작을 선록한 것이다. ≪이청조집교주(李淸照集校注)≫(人民文學出版社, 1986)를 원전으로 삼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36수를 제외한 42수를 실었다. 그녀의 사 작품은 약 78수로 추정이 되는데, 송대(宋代) 판본은 실전되었고, 명대 이후 그녀의 작품을 엮어서 《수옥사(漱玉詞)》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사 작품은 대체로 의미가 풍부하고 함축적인데, 후반기로 갈수록 슬프고 처량한 성격에 짙어졌다. 여인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도 완곡하며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낸 것이 그녀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며, 이러한 특징은 사 장르의 주요 성격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전란기를 거쳤기 때문에 애국적인 내용을 지닌 작품도 있어서 남성 문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청조의 사는 ‘이안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사사(詞史)에 있어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한다. 학위논문에서 시사가 완역된 적이 있을 뿐이고, 단행본으로 출간은 아직 전무하다. 중국 사문학 흐름을 파악할 때에도 주요 자료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여성 작가와도 비교 연구가 가능할 것이므로, 여성 문학 연구 전반에 기초 자료로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중국에서 ‘앉아서는 경전.역사서를 읽고 누워서는 소설을 읽으며 뒷간에서는 사를 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시되었던 문학 장르가 사(詞)다. 그러나 사는 송대에 전성기를 맞았고, 이청조는 ‘이안체’로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의 사로 여성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 고전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중국 제일의 여류 문인 이청조의 사들을 통해 중국 사문학 흐름을 파악하고 여성 문학의 한 유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지은이
이청조는 이안거사(易安居士)라는 호로 알려져 있다. 유장하고 광범위한 중국의 전통문학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조명을 받았던 여성은 송대(宋代)의 이청조였다. 그녀는 북송 말엽이었던 1081년, 경학에 조예가 깊었던 이격비(李格非)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탁월한 재능은 학문과 문학에 열정적이고 진지했던 부친의 지지와 학술과 예술을 애호했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일찌감치 발휘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비판적 안목 또한 기를 수 있었다.
1101년, 18세에 이청조는 조명성(趙明誠)과 결혼하였다. 조명성은 문학과 금석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이로, 이청조에게 예리한 분석력과 종합적인 정리 능력을 배양시켜 주었다. 이들 부부는 공통 관심 분야였던 금석서화를 함께 연구하여 나중에 ≪금석록(金石錄)≫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더구나 이들 부부는 더없이 금실이 좋았기 때문에 이청조의 문학적 취향은 날개를 단 듯 낭만적 성격이 극대화되었다. 남편과 함께 지내면서 행복한 시기를 지냈던 그녀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 작품화하는 데 열중하였다. 이듬해에 조명성은 원우당(元祐黨) 사건에 연루되어 이청조와 처음 이별하게 된다. 이후 1129년 조명성과 사별할 때까지 이러한 이별과 만남이 거듭되면서 이청조는 비로소 처완(凄惋)한 정취를 작품에 드러내게 되었다.
1127년 북송정권이 멸망하면서 이청조의 불행도 시작되었다. 1129년에 조명성은 호주지부(湖州知府)로 임명되어 가던 중 건강(建康)에서 열병으로 죽었다. 조명성의 죽음은 송의 남도(南渡)와 함께 이청조의 생애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이청조는 남송 조정이 중원을 회복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깨닫고 남송 조정의 무능함을 질책하고 비평하는 동시에 사회와 사대부의 부패에 대해 비분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132년, 피란 와중에 장여주(張汝舟)에 개가하게 된다. 그러나 장여주에 대한 인간적인 고마움 때문에 맺어진 재혼은 한 달여 만에 인간성에 대한 불신만을 남긴 채 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청조로 하여금 이전의 작풍에서 탈피하여 시대적, 개인적 불행을 강하게 표현하게 하였다. 이후 그녀는 항주(杭州), 금화(金華) 등지를 떠돌며 홀로 늙다가 세상을 떠났다. 졸년이 분명치 않으나 대략 73년 이상의 삶을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에서 보듯 그녀의 생애는 북송 멸망을 기점으로 전후반기로 나뉜다. 그녀는 문학적 분위기가 짙은 가정적 환경 속에서 자신의 천부적인 문학적 자질을 배양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취향은 조명성과 혼인하면서 더욱 깊이가 생겼고 수준이 높아졌다. 생애의 전반기에 지어진 작품은 주로 자연에 대한 사랑을 깔끔하고 밝게 그리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정은 처완한 정조로 그리고 있다. 후반기에서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때문에 사풍(詞風) 역시 슬프고도 비참하게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여러 경험은 그녀의 사에 다양한 정서로 표현되었으며, 결국 그녀로 하여금 불후의 명성을 누리게 하는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옮긴이
이지운은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전임연구원을 지내며 ≪사고전서총목제요≫를 번역하였으며, 현재 서울대?이화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통시기 중국문인의 애정표현연구≫, ≪이청조사선≫, ≪온정균사선≫,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동양문학편≫(공저), ≪당시삼백수≫(공역) 등이 있으며, 주요논문으로 <이상은 영물시 시론>, <당대 여성시인의 글쓰기-이야, 설도, 어현기를 중심으로>, <심의수의 도녀시 연구> 등이 있다.
차례
1. 남가자
2. 전조만정방
3. 어가오
4. 여몽령
5. 여몽령
6. 다려
7. 보살만
8. 보살만
9. 완계사
10. 완계사
11. 완계사
12. 봉황대상억취소
13. 일전매
14. 접련화
15. 접련화
16. 자고천
17. 소중산
18. 원왕손
19. 임강선
20. 취화음
21. 호사근
22. 소충정
23. 행향자
24. 고안아
25. 만정방
26. 옥루춘
27. 어가오
28. 청평락
29. 자고천
30. 첨자추노아
31. 억진아
32. 염노교
33. 영우락
34. 접련화
35. 무릉춘
36. 성성만
37. 점강순
38. 감자목란화
39. 탄파완계사
40. 탄파완계사
41. 서자고
42. 경청조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동쪽 울타리에서 술 마시며 황혼녘 지내고 나니
암향 퍼져와 소매를 채운다.
영혼 다 스러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