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00자평
1987년에 등단한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고진하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호랑나비 돛배>를 비롯한 51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
지은이
고진하
1953/ 강원도 영월 출생
1978/ 감리교 신학대학 졸업
1987/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빈 들> 외 5편으로 데뷔
1990/ 첫 시집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민음사) 간행
1993/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문학과지성사) 간행
1997/ 시집 ≪우주배꼽≫ 간행
1997/ 김달진 문학상 수상
2001/ 시집 ≪얼음수도원≫ 간행
2001/ 산문집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간행
2004/ 산문집 ≪이 아침 한 줌 보석을 너에게 주고 싶구나≫ 간행
2005/ 시집 ≪수탉≫ 간행
2005/ 산문집 ≪고진하 목사의 몸 이야기≫ 간행
2009/ 산문집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간행
2009/산문집 ≪영혼의 정원사≫
2011/시집 ≪거룩한 낭비≫
**역서
1986/ 고진하 편역 ≪현대문학과 종교≫
1986/ 가브리엘 바하니안 지음, 고진하 역, ≪신의 죽음과 현대문학≫
1990/ 데이비드 치올코프스키 지음, 고진하 역, ≪성자에서 민중으로≫
차례
시인의 말
빈 들
연자매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농부 하느님
허수아비
석양(夕陽)의 수수밭에서
사마귀
없는 손가락 두 개
욥
굴뚝의 정신
느티나무
프란체스코의 새들
겨울 우화
껍질만으로 눈부시다, 후투티
천국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
일어나라, 죽음의 꽃을 들고!
고압의 시간
허물
아침 산맥
즈므 마을 1
흰줄표범나비,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진흙 붕대
묵언(默言)의 날
즈므 마을 2
미완의 불상
어머니의 성소(聖所)
지게게
이른 봄날
요나
라일락
꽃뱀 화석
범종 소리
홍련암에서
신성한 숲
얼음 수도원 1
얼음 수도원 2
새가 된 꽃, 박주가리
낙타 무릎의 사랑 2
그리마를 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구룡사 은행나무
노래하는 가시덤불
가방 속 하루살이
계명성
구름패랭이
호랑나비 돛배
어떤 인터뷰
나무
문주란
얼음 수도원 3
악양 시편 1
호수
시인 연보
책속으로
호랑나비 돛배
홀로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가파른 목조 계단 위에
호랑나비 날개 한 짝 떨어져 있다.
문득
개미 한 마리 나타나
뻘뻘 기어오더니
호랑나비 날개를 턱, 입에 문다.
그러고 나서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호랑나비 날개를 번쩍 쳐드는데
어쭈,
날개는 근사한 돛이다.
(암, 날개는 돛이고말고!)
바람 한 점 없는데
바람을 받는 돛배처럼
기우뚱
기우뚱대며
산길을 가볍게 떠가고 있었다
개미를 태운
호랑나비 돛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