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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지음,
주수민 옮김,
2024.7.17, 208쪽, 문학, 소설, 지만지, 한국문학, 사륙판(128*188)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 이야기
《장한절효기》는 남양태수 오세신이 세 살배기 장영의 부친 장필한을 모함해 옥에 가두고 나아가 장필한의 아내 한씨를 탐해 장필한을 죽게 한 데서 시작한다. 자신의 남편이 오세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안 한씨는 혼인을 빙자해 오세신을 자기 집으로 유인해 독살한 후 잔인하게 사체를 훼손하고 도주한다. 한씨의 복수는 또 다른 인물에게 복수심을 일으킨다. 오세신의 아내 또한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한씨를 뒤쫓게 된 것이다. 한편, 모친과 헤어져 양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장영 또한 친부모의 억울한 사연을 알고는 오세신과 모의했던 영릉태수 진한을 죽여 복수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외국에 사신으로 갔던 진씨의 부친 진무가 귀국해 장영과 진한의 대결에서 장영에게 목숨을 잃은 아들 진건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다. 이쯤 되면 ‘복수’란 《장한절효기》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자 작중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이 작품의 서사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꼬리에 고리를 무는 복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송(宋)vs원(元)의 대립구도
《장한절효기》는 영웅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원나라 초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족이 세운 송나라가 망하고 몽골의 나라인 원나라가 건국된 ‘송말원초’를 배경으로 한다. 장영 부자를 비롯한 송나라 유민들과 남양태수 오세신을 필두로 한 원나라 관원들의 대립이 《장한절효기》의 기본 구조다. 따라서 원나라 관원인 남양태수 오세신과 영릉태수 진한의 모함에 의한 장필한의 죽음은 개인적 차원의 불행을 넘어 망국의 유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거대한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원나라에 대한 작자의 인식이다. 작품에서 원나라 관원들은 하나같이 불의하며,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에게는 ‘사특한 요물’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반대로 장영을 비롯한 송나라 유민들은 선하며,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은 ‘신격의 구원자’로 그려진다.
‘송말원초’라는 작중 배경은 한족의 나라가 망하고 이민족이 세운 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조선 후기의 시대 상황과 유사하다. 즉 송나라 유민들과 원나라 관원의 대립 구도, 나아가 그들에게 부여된 악(惡)과 선(善)의 구도는 조선 후기 청나라에 대한 변치 않는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인 송말원초와 작품이 창작된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을 겹쳐 보며 《장한절효기》에 흐르는 숭명배청(崇明排淸) 의식을 읽어 내는 주수민 교수의 섬세한 독법은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지며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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